검은 코드의 복수: 천재 해커의 숨겨진 진실과 글로벌 기업의 몰락
프롤로그: 잿더미가 된 꿈
비가 내리는 서울의 밤거리. 27층 오피스텔의 창가에 앉아 있는 강유진(25)의 모니터에는 끝없이 흐르는 코드들이 반사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테크노마트 빌딩의 거대한 LED 전광판에는 "글로벌 IT 기업 테크놀로지스, 사상 최대 실적 달성" 이라는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유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15년 전, 그날의 기억이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아빠... 엄마..."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2009년 여름, 서울 외곽의 한 연구소.
매미 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8월의 늦은 오후였다. 연구소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이곳이 도심과는 동떨어진 은밀한 공간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철제 펜스와 삼중 보안 게이트를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이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R&D 센터였지만, 내부에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 살의 강유진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가에 놓인 과학 잡지를 읽으며, 부모님이 어떤 대단한 연구를 하고 계실지 상상하곤 했다. 어린 유진의 눈에 비친 부모님은 늘 영웅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 강민석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의 권위자였고, 어머니 이수진 박사는 시스템 아키텍처 전문가였다. 두 사람은 테크놀로지스의 핵심 연구원이었고, 유진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유진아, 아빠랑 엄마가 조금만 더 늦을 것 같아. 숙제 다 했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랐다. 긴장감이 묻어있었고, 그 뒤로 들리는 부산한 소리가 어린 유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열 살의 그는 그 미묘한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평소보다 부모님이 늦는다는 것에만 실망했을 뿐이었다.
"네 아빠, 다 했어요. 근데 언제 와요? 배고파요..."
유진의 투정 섞인 목소리에 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 소리와 누군가가 급하게 부르는 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다급한 속삭임이 희미하게 들렸다.
"곧 갈게. 냉장고에 있는 김밥 먹고 있어."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것이 부모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고는, 열 살의 유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밤이 깊어갔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감에 잠들지 못하고 있던 유진의 귀에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창밖으로 붉은 빛이 하늘을 물들이는 것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뉴스는 차갑게 사실을 전했다.
[속보] 테크놀로지스 연구소 대형 화재 발생... 12명 사망
화면 속 앵커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어제 밤 11시 경 발생한 화재로 인해 연구소 내부가 전소되었으며, 야간 근무 중이던 연구원 12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고 원인은 실험실 내 전기 누전으로 추정됩니다..."
유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TV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자막에서 부모님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민석 (42세), 이수진 (39세)...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열 살의 아이에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에서 들었던 그 이상한 긴장감이 유진의 마음 한켠에 의문으로 남았다.
"유진아, 아빠랑 엄마가 조금만 더 늦을 것 같아. 숙제 다 했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묻어있었다. 열 살의 유진은 그때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네 아빠, 다 했어요. 근데 언제 와요? 배고파요..."
"곧 갈게. 냉장고에 있는 김밥 먹고 있어."
그날 밤, 유진의 부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뉴스에서는 테크놀로지스 연구소의 대형 화재 사고가 보도되었다. 12명의 연구원이 사망했고, 그중에는 유진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식 발표는 '실험실 사고'였다. 하지만 열 살의 유진은 그날 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느낀 그 이상한 감각을 잊지 못했다.
제 2장: 코드의 시작
서울대학교 302동 컴퓨터공학과 실습실, 2024년 봄.
창밖으로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오후, 실습실 구석에서 들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강유진의 눈동자가 모니터에 반사된 코드들 사이를 날카롭게 훑고 있었다.
"또 해킹했어? 너 진짜 대단하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유진은 화면을 최소화했다. 고개를 돌리자 대학 동기 김민수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 4년 내내 같은 과에서 공부하며 가까워진 친구였지만, 그조차도 유진의 진짜 모습은 알지 못했다.
"그냥 취미야."
유진의 대답은 언제나 그랬다. 시크하면서도 모호한 미소와 함께 던지는 이 한마디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피해가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취미 치고는 너무 대단한데? 학과 서버에 백도어 심은 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거 찾아내서 역추적한 게 너라며? 교수님들이 네 칭찬을 자꾸 하시던데."
민수는 유진의 옆자리에 앉으며 커피를 건넸다. 부드러운 카페라테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유진은 커피를 받아들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그것은 운이 아니었다. 매일 밤 새벽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코딩과 해킹 공부의 결과였다. 학과 서버의 백도어를 발견한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그는 모든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내는 것에 집착하다시피 했다. 그 이유를... 아니, 그 진짜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상 한켠에 놓인 오래된 사진 한 장.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행복했던 그 순간이, 이제는 그를 다크웹의 깊은 곳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있었다.
"근데 넌 왜 보안업체 면접은 다 거절하는 거야? SKK사이버시큐리티에서 준 연봉이 어마어마했다며."
민수의 물음에 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기업 보안팀의 스카우트 제의는 매주 같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더 큰 목표가 있었다.
"회사 생활이 내 적성에 안 맞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스크린 속에 최소화되어 있는 창에는 테크놀로지스의 보안 시스템 분석 자료가 가득했다. 15년간 그는 이 회사의 모든 것을 파헤치고 있었다. 방화벽 구조, 네트워크 토폴로지, 보안 프로토콜의 모든 세부사항까지.
"암튼 난 네가 부럽다. 난 아직도 코딩테스트 문제 절반도 못 푸는데... 너는 1학년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잖아."
민수의 말에 유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천재라...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복수라는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었다. 매일 밤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그날 밤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는 코드와 씨름했다.
실습실의 창문으로 석양이 물들어갔다. 곧 어둠이 찾아올 시간. 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 주에 보자."
"어? 벌써 가? 우리 저녁이나..."
"미안. 오늘은 좀 바빠서."
유진의 발걸음은 서둘렀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새로운 해킹 시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스의 최신 보안 업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다. 그들의 시스템이 변화하는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키보드 소리는 더욱 빨라졌다. 모니터 속 창들은 끝없이 생성되고 사라졌다. 방 안에는 캔 커피가 쌓여갔다. 그의 눈에는 한순간도 흔들림이 없었다.
제 3장: 숨겨진 진실
2024년 5월의 어느 새벽, 강남 오피스텔.
새벽 3시 27분. 서울의 밤거리는 고요했지만, 27층 오피스텔의 한 구석에서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었다. 강유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6개의 모니터가 푸른빛을 발하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드디어..."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수개월간의 노력 끝에, 그는 테크놀로지스의 구형 서버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2009년 당시의 백업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버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빗방울에 반사되어 흐릿하게 춤추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15년 전 그날처럼.
[접근 성공: TECH_BACKUP_2009_Q3]
스크린에 떠오른 텍스트에 유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폴더가 나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일상적인 업무 자료들이었다. 회계 장부, 인사 기록, 연구 보고서... 하지만 그의 눈은 특별한 것을 찾고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새벽 4시 12분.
그때였다.
"뭐지..."
한 이메일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목: RE: Project Phoenix - 긴급처리 요망
발신: CEO 비서실 (secretariat@technologics.co.kr)
수신: 보안팀장 (security.chief@technologics.co.kr)
날짜: 2009.08.15 20:47
유진의 손가락이 떨렸다. 8월 15일...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이메일을 열었다.
'오늘 밤 즉시 처리 바랍니다. 증거는 모두 제거하세요. 불가피한 희생이 있더라도 프로젝트의 성공이 우선입니다. - 오민석 이사'
화면이 흐려졌다. 유진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첨부파일 하나가 있었다. 'Phoenix_Final_Report.pdf'
암호가 걸려있었다.
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해킹 경력 15년 동안 쌓아온 모든 기술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암호 해독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추정 시간: 36시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더 빠른 방법이 필요했다.
갑자기 그의 눈이 이메일 본문의 한 구절에 꽂혔다.
"...코드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직감이 왔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Password: REBIRTH2009]
파일이 열렸다.
"젠장..."
유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보고서의 내용은 그의 최악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것이었다.
[Project Phoenix 최종 보고서]
- 목적: 군사용 AI 자율 시스템 개발
- 예상 사망자 수: 10-15명
- 보안등급: SSS
- 처리방안: 실험실 사고로 위장, 전체 시설 화재 유도
문서는 계속되었지만, 유진의 시선은 한 문장에 멈춰있었다.
'프로젝트 중단 요구 연구원 명단: 강민석, 이수진...'
창밖에서 천둥이 울렸다. 빗소리가 거세졌다.
유진은 모든 증거를 자신의 보안 서버로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새벽 5시, 도시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할 무렵.
유진은 마지막 백업을 완료했다. 모니터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그의 눈에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 4장: 복수의 그림자
강남의 한 고급 커피숍, 오후 2시.
"프로젝트 피닉스... 이게 뭐였을까요?"
유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 전직 테크놀로지스 보안팀 부장 김형우(62)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 그게 무슨..."
김부장의 떨리는 손이 커피잔을 움직이려 했지만, 잔은 테이블 위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주변의 소음, 커피머신의 작동음,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해졌다.
"15년 전 그날 밤, 부장님은 보안팀에 계셨죠?"
유진은 태블릿을 꺼내 이메일 내용을 보여주었다. 김부장의 눈이 커졌다.
"이건... 이건 어떻게..."
"중요한 건 제가 어떻게 이걸 얻었는지가 아닙니다. 부장님, 제 부모님이..."
"그만!"
김부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김부장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건... 알아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알겠나?"
김부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카페의 출입구를 향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나요?"
유진의 질문에 김부장은 흠칫 놀랐다.
"자네... 자네가 강민석 박사의 아들이란 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제가 먼저 연락드렸잖습니까."
"아니... 내 말은, 내가 당시 보안팀에 있었다는 걸 어떻게..."
김부장의 말끝이 흐려졌다. 유진은 태블릿에 저장된 또 다른 문서를 보여주었다. 2009년 테크놀로지스 조직도였다.
"과거의 기록은 결코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디지털 흔적은 항상 남아있죠."
김부장의 안색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는 주변을 다시 한번 살폈다.
"난 더 이상 말할 게 없네. 곧 있으면 정년퇴직인데... 남은 평화로운 삶마저 망치고 싶진 않아."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김부장을 유진이 붙잡았다.
"잠깐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프로젝트 책임자가 누구였습니까?"
김부장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그건 알면서 왜 묻나? 오민석 이사... 지금의 회장이야."
갑자기 김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를 본 그의 얼굴이 굳었다.
"더 이상 묻지 말게.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김부장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카페를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비틀거렸다.
유진은 자리에 남아 커피잔을 응시했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가 검은 수면을 만들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테크놀로지스 인사발령 단행... 김형우 전 부장, 베트남 지사 고문으로 발령]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직도 같은 수법이군요..."
테크놀로지스는 불편한 진실을 아는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 해외 발령, 갑작스러운 퇴사, 때로는... 사고.
유진은 노트북을 켰다. 베트남 지사의 시스템에 접속했다. 김부장의 새로운 이메일 계정이 생성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시작입니다, 김부장님."
그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김부장의 모든 통신은 유진의 서버를 거치게 될 것이다.
진실은, 결코 영원히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
제 5장: 균열의 시작
테크놀로지스 본사 35층, CEO 오민석의 집무실.
새벽 1시 27분.
도시의 불빛이 발아래 펼쳐진 파노라마처럼 빛나고 있었다. 오민석(62)은 위스키 잔을 손에 든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 야경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회장님."
문이 열리고 보안팀장 장민호(45)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얼마나 심각한가?"
오민석은 창밖을 보며 물었다.
"2009년 자료에 접근 시도가 있었습니다. 구형 백업 서버에..."
위스키 잔이 덜그럭거렸다. 오민석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라고? 그게 아직도 남아있었다고?"
"네. 완전 폐기되지 않은 백업이..."
"바보 같은!"
오민석이 위스키 잔을 책상에 내리쳤다. 갈색 액체가 중요한 서류들 위로 쏟아졌다.
"즉시 전체 시스템 보안 레벨을 올려. 그리고... 프로젝트 피닉스 관련 자료는 모두 물리적으로 폐기해. 단 한 바이트도 남기지 마."
"이미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장민호가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해킹 시도자의 수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해커들과는 달랐어요. 마치 우리 시스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민석은 창가에서 돌아섰다. 달빛이 그의 주름진 얼굴을 비췄다.
"내부자인가?"
"아닙니다. 현재 직원 중에는 이 정도 실력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장민호는 태블릿을 꺼내들었다.
"해킹 패턴을 분석해보니, 지난 15년간 우리 시스템을 꾸준히 공략해온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점 정교해졌죠. 마치... 우리를 특별히 목표로 삼은 것처럼요."
오민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15년..."
그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오래된 파일 하나를 꺼냈다. 2009년 8월의 사고 보고서였다.
"혹시... 생존자가 있었던 건가?"
"아니요. 당시 사망자 12명은 모두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가족들은?"
장민호는 태블릿을 조작했다.
"대부분 보상금을 받고 특별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다만?"
"강민석 박사의 아들이 눈에 띕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수석 졸업,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보안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죠. 그리고..."
장민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어제 김형우 전 부장과 접촉했습니다."
오민석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위스키 병을 집어 들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려 따르지 못했다.
"김형우를... 베트남으로 보냈지?"
"네. 하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CCTV를 확인해보니, 대화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김 전 부장이 상당히 동요한 모습이었습니다."
오민석은 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다. 15년 전, 그는 이사였다. 야망에 가득 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회장이 되었지만, 그 사건의 기억은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조용히... 처리하게."
"어떤 식으로...?"
"자네가 알아서 하게. 난 모르는 일로 해두겠네."
장민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가고 난 후, 오민석은 다시 창가로 걸어갔다.
서울의 야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불빛 사이로 어둠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그의 과거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IT조선일보 김기자입니다. 혹시 프로젝트 피닉스에 대해 들어보신 적..."
오민석은 통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제 6장: 디지털 미로
유진의 아파트, 새벽 3시.
모니터 여섯 대가 푸른빛을 발하는 가운데, 까만 후드티를 입은 유진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빗방울에 반사되어 모니터 화면에 어른거렸다.
"드디어..."
유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수개월간의 작업 끝에, 그는 테크놀로지스의 최고 기밀 서버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ACCESS GRANTED: TOP_SECRET_DATABASE]
화면에는 수천 개의 폴더가 나타났다. 대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의 자료였다. 인공지능 개발, 양자 컴퓨팅, 군사 시스템... 테크놀로지스의 모든 비밀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유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2010년, 2009년...
그중 하나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P_2009_Final'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마우스를 향했다.
그때였다.
-Warning: Unauthorized Access Detected-
-Initiating Emergency Protocol-
-System Lockdown in Progress-
"젠장!"
유진은 재빨리 백도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Executing: GHOST_PROTOCOL_V2.3]
[Redirecting Security Trace...]
[Creating Phantom Routes...]
보안 시스템이 그의 흔적을 쫓고 있었지만, 가상의 경로들이 실시간으로 생성되며 추적을 방해하고 있었다. 마치 미로 속에서 수천 개의 허상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처럼.
"시간이 없어..."
유진의 손가락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P_2009_Final' 폴더의 내용을 급하게 복사하기 시작했다.
[Download Progress: 23%]
-Warning: Security Level Increased-
[Download Progress: 47%]
-Multiple Security Breaches Detected-
[Download Progress: 72%]
-Emergency Shutdown Initiated-
[Download Progress: 89%]
-System Will Terminate in 10 Seconds-
[Download Progress: 96%]
-5 Seconds-
[Download Progress: 99%]
-3...2...1...-
마지막 순간에 연결이 끊겼다. 유진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얻었어..."
복사된 파일들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암호화되어 있었지만, 몇몇 문서들은 읽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 피닉스 - 주간 보고서]
일자: 2009년 8월 10일
참석자: 오민석 이사, 장성훈 연구소장, 강민석 박사, 이수진 박사...
내용:
-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 1차 테스트 실패
- 인명 피해 발생 (연구원 2명 사망)
- 강민석 박사팀, 프로젝트 중단 요청
- 이수진 박사, 윤리위원회 보고 시사
- 대응방안 논의 필요
다음 페이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긴급 회의록]
일자: 2009년 8월 15일 16:30
참석자: 오민석 이사, 보안팀장
결정사항:
- 프로젝트 피닉스 증거 인멸
- 반대파 처리 계획 수립
- 연구소 화재 시나리오 확정
- 보험금 청구 준비
...
유진의 손이 떨렸다. 모니터 화면이 흐려졌다. 눈물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갑자기 노트북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테크놀로지스의 보안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Alert: Massive Port Scan Detected]
[Multiple Login Attempts from Unknown Sources]
[Firewall Under Attack]
그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유진은 시스템을 신속하게 차단하고 모든 증거를 고도로 암호화된 클라우드 서버로 이전했다. 이제 그의 모든 준비가 빛을 발할 때였다.
"이제... 진짜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15년을 기다려온 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었다.
제 7장: 그림자의 춤
테크놀로지스 본사 지하 3층, 통합보안관제센터.
2024년 5월 15일 새벽 4시 12분.
"팀장님! 비정상적인 접근이 또 발생했습니다!"
젊은 보안요원의 외침에 장민호 팀장이 커피를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대형 스크린에는 빨간색 경고창이 끝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느 서버지?"
"TOP_SECRET_DATABASE입니다. 그리고... 2009년 자료에 접근했습니다."
장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머그잔이 책상 위로 떨어졌다. 뜨거운 커피가 바닥으로 쏟아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추적해!"
보안팀원들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모니터에 코드가 흘러내렸다.
"팀장님, IP 주소가 계속 변경되고 있습니다. VPN을 통한 우회... 아니, 이건..."
"뭐지?"
"수천 개의 가상 경로가 동시에 생성되고 있습니다. 마치... 미로 같아요."
장민호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20년간의 보안 경력에서 이런 수법은 처음이었다.
"채정우!"
"네, 팀장님?"
보안팀의 에이스 채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8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그는 이미 사이버 수사대에서 전설로 불리던 인재였다.
"2009년 자료를 노렸다고요?"
"네. 특히 프로젝트 피닉스 관련..."
장민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직감이 왔다.
"당시 사망자 명단을 다시 확인해봐. 특히 유가족들 동향을..."
채정우는 재빨리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커졌다.
"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스크린에 한 젊은 남자의 프로필이 떴다.
[강유진]
- 나이: 25세
- 학력: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수석졸업
- 현직: 넥스트시큐리티 수석 컨설턴트
- 특이사항: 2009년 사고 피해자 강민석 박사의 아들
"이 회사... 작년에 우리 시스템 보안 컨설팅을 했던..."
장민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경고음이 울렸다.
[ALERT: Data Breach Detected]
[Multiple Files Downloaded]
[Security Protocol Breached]
"차단해! 당장!"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스크린에는 초록색 글자가 떠올랐다.
[Download Complete: P_2009_Final]
"젠장..."
장민호는 휴대폰을 꺼냈다. 오민석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스크린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15년 전의 진실, 아직도 숨기고 싶으신가요?'
보안팀 전체가 침묵에 빠졌다. 채정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넌 모르는 게 좋아."
장민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도 15년 전 그날 밤, 그 자리에 있었다.
"모두 퇴실해. 채정우만 남아."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방음 처리된 보안관제센터에 채정우와 장민호만이 남았다.
"자네한테 특별한 임무를 맡기겠네."
장민호는 서랍에서 검은색 USB를 꺼냈다.
"이건... 15년 전 진짜 기록이야. 내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채정우는 USB를 받아들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무슨 일이 생기다니..."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거야. 그리고 난...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테크놀로지스의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제 8장: 붉은 새벽
2024년 5월 16일 아침 7시 30분.
강남역 인근 넥스트시큐리티 사무실.
유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로 향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보안 컨설턴트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지난밤의 해킹으로 인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사무실 건물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평소엔 없던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감시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향하는 동안, 유진은 자신의 노트북에 설치해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확인했다. 테크놀로지스의 보안팀이 그를 추적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팀장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유진 씨, 큰일 났어요. 테크놀로지스에서 긴급 미팅을 요청했어요. 우리 보안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나..."
유진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강유진 씨죠?"
낯선 목소리였다. 차갑고 기계적인,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맞습니다만..."
"15년 전, 당신 부모님의 진실을 알고 싶지 않나요?"
유진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가 한순간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십니까?"
"테크놀로지스 옛 연구원입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죠. 오늘 저녁 7시, 삼성동 파크카페."
전화가 끊겼다.
유진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건 분명 함정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즉시 컴퓨터를 켜고 파크카페 주변의 CCTV를 해킹했다. 지난 일주일간의 영상을 고속으로 확인했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 정체가 의심되는 차량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발견.
파크카페 지하 주차장에서 자주 보이는 검은색 제네시스. 번호판을 추적해보니 테크놀로지스 소유였다.
'과연...'
유진은 자신의 비상용 서버에 접속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해둔 것들이 있었다.
[Emergency Protocol Ready]
[Dead Man's Switch Activated]
[Auto-Release System Standing By]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그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인사했다.
"저 잠깐 고객사 미팅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방 속에는 노트북과 함께, USB 드라이브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 안에는 테크놀로지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모든 증거가 담겨 있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CCTV가 그를 쫓는 것이 느껴졌다. 거리의 모든 카메라가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 알 수 없음]
'당신 부모님은 영웅이었습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진실을 이제 당신이 밝힐 차례입니다.'
유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15년 전, 그날처럼.
제 9장: 진실의 조각들
파크카페, 저녁 7시 정각.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노인. 흰 머리에 깊은 주름, 하지만 그의 눈빛은 또렷했다.
"김성우 박사님..."
유진이 중얼거렸다. 15년 전 사고 당시, 부모님과 같은 연구팀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앉게나, 유진 군."
김성우는 낡은 USB를 꺼냈다.
"이게... 당시의 모든 기록일세. 자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것들이야."
"왜 지금..."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이 비밀을 가지고 가긴... 너무 무거워."
제 10장: 숨겨진 진실의 무게
유진의 손이 떨렸다. USB 속 파일들을 열어보는 동안,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갔다.
프로젝트 피닉스.
그것은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 무기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였다. 테크놀로지스는 겉으로는 민간 기업이었지만, 비밀리에 군사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유진의 부모는 이 비윤리적인 프로젝트에 반대했고, 이를 폭로하려 했다.
"이걸 세상에 알려야 해..."
화면에는 부모님의 마지막 메시지가 떠있었다.
'유진아,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옳은 일을 하려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진실은...'
메시지는 거기서 끝났다.
제 11장: 정체의 그림자
2024년 5월 17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강유진이라는 인물을 찾았습니다."
특수부장의 책상 위에 한 장의 사진이 놓였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식 날의 모습이었다.
"이 사람이... 모든 것을 폭로한 내부고발자인가?"
"네. 하지만 단순한 내부고발이 아닙니다. 그는..."
수사관이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에는 15년 전 사고 당시의 자료가 떠있었다.
"피해자 강민석 박사의 아들입니다."
특수부장의 눈이 커졌다.
같은 시각, 테크놀로지스 보안팀 사무실.
채정우는 모니터 앞에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팀장님... 이건..."
화면에는 지난 15년간의 시스템 로그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의 네트워크에 누군가가 마치 유령처럼 존재해왔다는 증거였다.
"이 코드... 마치 우리 시스템의 일부처럼 완벽하게 숨어있었어요. 그것도 15년 동안..."
장민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테크놀로지스 본사 비상 이사회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우리가 어떻게 한 학생에게..."
이사진들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고, 해외 파트너사들은 계약 파기를 통보해오기 시작했다.
그때 회의실의 모든 전자기기가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Incoming Message-
스크린에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한 젊은 남자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테크놀로지스 이사회 여러분."
모두가 숨을 죽였다.
"저는 강유진입니다. 강민석 박사의 아들이죠."
오민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네가!"
"네, 제가 바로 당신들이 그토록 찾던 해커입니다. 하지만 전 단순한 해커가 아닙니다."
유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저는... 정의의 실행자입니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더욱 충격적인 영상들이 이어졌다.
프로젝트 피닉스의 실체.
자율 군사 시스템의 비밀 실험.
인공지능 무기의 오작동으로 인한 연구원들의 죽음.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계획된 화재 사고.
"이건 제가 15년간 수집한 증거들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나머지는..."
유진이 씩 웃었다.
"이미 검찰과 언론에 모두 전달됐습니다."
회의실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강남의 한 오피스텔.
유진은 노트북 앞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는 오래된 가족사진 한 장이 놓여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시작입니다."
그의 손가락이 마지막 키를 눌렀다.
[Final Protocol: Activated]
순간 테크놀로지스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했다. 전 세계 지사의 서버가 동시에 다운되기 시작했다.
15년의 준비.
15년의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진정한 복수.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15년 전, 그날처럼.: 폭풍의 전야
테크놀로지스 본사, 비상 이사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그 자료들이 아직도 남아있었다고요?"
오민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회장님, 김성우 박사가... 사본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찾아. 당장 찾아서 처리해!"
그때, 회의실 스크린이 갑자기 켜졌다. 검은 화면에 흰 글자가 떠올랐다.
'프로젝트 피닉스의 진실을 기억하시나요?'
제 12장: 심판의 그림자
2024년 5월 17일 오후 11시.
테크놀로지스 본사 35층 회장실.
오민석은 창가에 서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이 모든 불빛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회장님."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답니다."
오민석은 위스키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언제 오나?"
"지금 이미 건물을 포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창밖으로 경찰차의 사이렌 불빛이 보였다. 마치 피를 흘리는 도시처럼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때 회장실의 모든 전자기기가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했다. TV, 컴퓨터, 태블릿... 모든 화면에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민석 회장님."
유진이었다.
"자네... 끝까지 이럴 건가..."
오민석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끝까지라뇨?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유진의 얼굴이 사라지고, 화면에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2009년 8월 15일, 오후 4시의 회의록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절대 중단될 수 없습니다. 인명 피해가 있더라도..."
젊었던 오민석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퍼졌다.
"기억나시나요? 그날 제 부모님이 찾아와서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화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연구소 복도를 걷는 강민석 박사와 이수진 박사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지 올바른 일을 하려 하셨을 뿐입니다."
오민석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너무 욕심이 났었다. 군사 기술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 기회를 위해 12명의 목숨을 희생시켰죠."
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이제 모든 진실이 세상에 밝혀질 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모든 것들이..."
그때 회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검찰청 특수부입니다! 오민석 회장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오민석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화면 속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부모님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었어..."
화면이 꺼지기 직전, 유진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네. 그리고 이제 그분들이 자랑스러워하실 만한 일을 해냈습니다."
강남의 오피스텔.
유진은 마지막 키보드 키를 눌렀다.
지난 15년간 수집한 모든 증거가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피닉스의 전체 문서.
은폐된 사망 사고들의 진실.
정부 고위 관료들과의 유착 관계.
해외 불법 무기 거래 증거.
그의 복수는 단순히 테크놀로지스의 몰락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재벌 사회의 어두운 이면 전체를 드러내는 시작이었다.
창밖에서 천둥이 울렸다.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역습의 시작
유진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스의 전 지점, 전 시스템에 동시에 접근했다. 15년간 준비한 완벽한 해킹 코드가 실행되기 시작했다.
-서버실 A구역 침투 완료-
-보안 시스템 우회 성공-
-내부 문서 서버 접근 중-
갑자기 모니터에 빨간 경고창이 떴다.
"역추적 시도 감지..."
유진은 미소지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자, 게임을 시작해볼까."
제 13장: 폭풍이 지나간 자리
2024년 5월 20일 아침.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
"피고인 오민석, 진술하실 내용이 있습니까?"
재판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법정은 이미 언론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카메라가 한때 IT업계의 거장이었던 오민석을 향하고 있었다.
오민석은 천천히 일어났다. 구치소 생활 3일 만에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다. 한때 푸른 빛을 자랑하던 고급 양복 대신 수의를 입은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방청석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프로젝트 피닉스, 연구원들의 사망, 증거인멸까지... 전부 제 지시였습니다. 15년 전, 저는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욕심이... 저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오민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민석 박사와 이수진 박사... 그들은 진정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막으려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아니, 그들의 목소리를 영원히 침묵시켰죠..."
법정 구석에서 유진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김성우 박사가 앉아 있었다.
"결국 해냈구나..."
김성우 박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법정 밖, 광화문 거리.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있었다. 피켓에는 다양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재벌 범죄 끝장내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윤리적 발전을"
뉴스 속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테크놀로지스 주가 90% 폭락, 상장폐지 위기-
-군수산업 비리 특별수사본부 설치-
-재벌 개혁 법안 국회 긴급 발의-
-과학기술 윤리위원회 설립 추진-
저녁, 강남의 오피스텔.
유진은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그가 15년간 써온 코드들이 있었다. 각각의 코드 줄마다 그의 한과 눈물이 담겨 있었다.
[System Status: All Operations Complete]
[Project Phoenix: Terminated]
[Justice Protocol: Executed Successfully]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가 없는 번호였다.
"네?"
"강유진 씨... 저는 국가정보원 디지털수사국 최민재 국장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사이버 윤리 감시 기구를 설립하려 합니다. 관심 있으신가요?"
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책상 위에는 부모님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부모님이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앞으로 다시는... 테크놀로지스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일입니다."
유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15년의 긴 복수가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지털 전쟁
테크놀로지스의 보안팀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늦었다.
유진의 코드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회사의 모든 비밀 문서가 언론사들에게 자동으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막아! 제발 막아!"
장민호는 절규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시스템은 하나둘 무너져갔다.
-최고 기밀 문서 유출 중-
-프로젝트 피닉스 관련 자료 전송 중-
-15년 전 사고 조사 보고서 공개 중-
제 14장: 새로운 여명
2024년 6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가사이버윤리감시위원회 신설 사무소.
아침 햇살이 사무실 창을 통해 들어왔다. 유진은 새로 발급받은 신분증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가사이버윤리감시위원회]
기술윤리감사국 국장
강유진
"어색하네요."
옆자리의 채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테크놀로지스의 전직 보안팀 에이스였던 그는 이제 유진과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신도 이제 이쪽 사람이 된 거예요?"
"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니까요."
사무실 안은 분주했다. 전국의 대기업들에서 제출한 기술 윤리 보고서들이 쌓여있었고, 새로 채용된 직원들이 시스템을 셋업하고 있었다.
유진의 컴퓨터에서 알림이 울렸다.
[Breaking News]
- 오민석 전 회장 1심 선고: 징역 20년 확정
- 프로젝트 피닉스 관련자 12명 구속 기소
- 테크놀로지스, 피해자 가족에 공식 사과와 배상 결정
- 과학기술 윤리법 국회 통과
"유진 씨."
최민재 위원장이 다가왔다.
"첫 임무가 들어왔습니다. K전자에서 AI 윤리 감사를 요청해왔어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기술은 더 이상 파괴가 아닌 보호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준비하겠습니다."
점심시간, 사무실 옥상.
유진은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도시는 그에게 복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왔다. 김성우 박사였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나? 당신 부모님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유진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네, 좋습니다. 어제 새로 생긴 카페는 어떠세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복도 벽에 걸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술은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
유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부모님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저녁이 되어 사무실을 나서는 길, 채정우가 다가왔다.
"국장님, 제가 발견한 게 있는데요..."
"채정우 씨, 퇴근 후엔 그냥 유진이라고 부르죠."
"아... 네. 유진 씨, 사실은..."
채정우는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에는 새로운 AI 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흔적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군요."
유진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하시죠."
두 사람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정의를 위한 그들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떴다.
마치 부모님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너지는 제국
다음 날 아침, 모든 뉴스의 헤드라인은 같았다.
[단독] 테크놀로지스 충격적 비밀 폭로
- 15년 전 연구원 사망 사건의 진실
- 비밀 군사 기술 개발 의혹
- CEO 오민석 전 이사의 증거인멸 지시 정황
테크놀로지스의 주가는 폭락했다. 검찰은 전격 수사에 착수했다.
오민석은 창백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게 끝났나..."
제 15장: 폭풍의 중심에서
검찰 특수부, 오후 2시.
"강유진 씨, 이번 사건의 내부고발자이자... 해킹의 주범이 본인이 맞습니까?"
검사 앞에 앉은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네, 맞습니다."
"모든 책임을 지실 각오이신가요?"
"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제 부모님과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16장: 심판의 날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
"피고인 오민석, 진술하실 내용이 있습니까?"
오민석은 천천히 일어났다. 한때 IT업계의 거장이었던 그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프로젝트 피닉스, 연구원들의 사망, 증거인멸까지... 전부 제 지시였습니다."
법정이 술렁거렸다.
제 17장: 정의의 대가
-테크놀로지스 전 회장 오민석, 징역 20년 선고-
-프로젝트 피닉스 관련자 12명 구속-
-내부고발자 강유진, 집행유예 선고... "공익제보 인정"-
유진은 법원을 나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5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성우 박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부모님도 편히 쉬실 수 있겠죠?"
"그래... 자네가 해냈어."
제 18장: 새로운 시작
1년 후,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
'화이트해커 보안컨설팅'이라는 간판 아래, 유진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유진 대표님,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기업 내부 윤리감사 시스템 구축..."
그의 책상 위에는 부모님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이제 그들은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에필로그: 빛을 향해
저녁 노을이 물드는 시간, 유진은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아빠, 엄마... 이제 모든 게 밝혀졌어요. 그리고 저... 새로운 길을 찾았어요. 앞으로는 제가 배운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려고요."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마치 부모님이 답해주는 것 같았다.
"진실은 결국 이기는 거야."
유진은 묘비를 쓰다듬었다. 이제 그의 가슴 속 응어리진 한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 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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