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일기예보에도 없던 폭우 속에서 혼자 차를 몰고 있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늦은 밤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이미 먹통이 된 지 오래였고,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앞은 보이지 않고 와이퍼는 빗물을 쓸어내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 검은 형체가 보였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스쳤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본 것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그는 비를 맞으면서도 전혀 젖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의 발...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공포에 질려 액셀을 밟았지만 엔진이 꺼져버렸다. 시동을 걸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가 이미 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강릉까지 태워주시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친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내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내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내가 그를 강릉까지 태워주면,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원을 이뤄준다고 했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매일 밤 12시, 나는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야 했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그의 거꾸로 된 발자국은 항상 내 집 앞에서 시작됐다. 그것을 따라가면 도시의 뒷골목, 폐건물, 지하도 같은 곳을 지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이상한 일들을 목격했다.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악행들, 숨겨진 죄악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
어느 날은 발자국이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본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벽에 붙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들은 서로 싸우고, 먹어치우고,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날은 발자국이 도심의 한 고층 빌딩 옥상으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팔을 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서 천천히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매일 밤 이어지는 공포의 순례는 내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도 환영이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고,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점점 그것들에 익숙해져 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이제 준비가 됐군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내게 건넨 것은 검은 양복 한 벌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본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의 이면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뒤에 숨겨진 진실이었다.
양복을 입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사람들의 내면이 보였다. 그들의 욕망, 증오, 공포가 실체를 가진 존재로 보였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나는 이제 그들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밤마다 거꾸로 된 발자국을 남기며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 중 하나. 우리는 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어둠을 수확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식이었고, 힘의 원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저도 당신들처럼 될 수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단순한 악마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악을 먹어치움으로써, 세상이 완전한 어둠에 잠기는 것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우리는 영원히 이 일을 해야 했다. 멈출 수 없었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가장 큰 형벌은, 우리가 한때 인간이었다는 기억을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이제 나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끔 그녀의 발자국과 마주치곤 한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우리의 발자국은 이제 영원히 이 도시의 밤을 수놓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폭우 속에서 그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묻곤 한다.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이 이것이었는지...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이제 영원히 밤의 순례자로 살아가야 한다.
당신이 밤길을 걸을 때, 혹시 거꾸로 된 발자국을 본다면... 절대로 따라가지 말기를. 그것은 당신을 위한 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미 그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다면,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당신도 곧 우리처럼 될 것이다. 영원한 밤의 순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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